「세한도 歲寒圖」의 비밀? 문화읽기

「세한도 歲寒圖」

 

도68 「세한도」 지본수묵. 1844(59세). 23.3×108.3cm. 개인 소장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한 동안 새로나온 서적들을 접하지 못하다 오늘 여러 신간들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여러 신간 중,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여서인지, '『세한도』(박철상, 문학동네, 2010)'가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책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니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한도」의 '구상과 창작배경'의 비밀을 풀었다 한다. '세한도의 비밀?' 「세한도」에 그러한 비밀, 수수께끼가 있었던가?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니, 「세한도」의 구상과 창작배경, 무엇보다 이 그림이 어떠한 경위로 어느 시점에 그려지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었고 이를 위 책에서 고증하였다고 한다. 

 

간략히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위 책에서 저자는 추사의 「세한도」그림의 원형은 12세기 송나라 소동파의 「언송도」(현재 전하지 않음)였으며, 이는 최근 발굴한 추사의 편찬서 『복초재적구』중 담계 옹방강의 「언송도」그림에 관한 한 시구의 내용(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에 근거하였고, 이 시는 20대 청년 추사가 연경 방문시 담계 옹방강의 서재에서 보게되었다 한다.

 

흥미롭다. 그런데 이내 '의문'이 생긴다. "정말 지금까지 이 「세한도」에 관한 창작배경과 시점이 알려지지 않았었나?"

 

「세한도」에 관한 창작배경과 시점

 

추사 김정희, 「세한도」 발문

 

세한도의 창작배경과 시점은 추사의 발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 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사마천司馬遷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아!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 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완당노인阮堂老人 씀." (한국 고전번역원 참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한도 歲寒圖」의 창작시점과 배경은 추사의 발문에 그 자세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더이상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세한도 歲寒圖」의 비밀?

 

추사 김정희 「세한도 歲寒圖」중 부분

 

동파 소식의 「언송도」가 어떤 그림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지만 앞서 살펴본 담계 시의 한 구절로 미루어 보면 위 책에서와 같이 그 관계를 상정하여 볼 수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 형태는 중국을 포함한 동양미술에서 흔한 관습적 표현(Conventional Expression)이다. 지금 일일이 밝힐 수 없지만 위 시구와 비슷한 내용의 동양미술의 화론들도 상당수 존재할거라 생각된다. 또 추사와 같이 수 많은 문헌과 사료들을 접한 큰 학자가 한 시구의 내용을 모티브로 이러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좀 무리한 추측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한가지 더 간과해서는 안되는 점은 추사가 예술을 사랑하고 폭넓은 신분의 사람들과 교류한 문인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가 사대부라는 사실이다. 이는 추사가 여느 화론, 화기에 의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기 보다 발문의 기록들 - 사마천, 공자, 적공 - 을 모티브로 그 마음의 울림을 붓으로 표현함에 있어 자연스럽게 이러한 소담한 필치의 그림이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글쎄, 책을 읽어보지 않고 기사들의 내용을 토대로 몇자 적다보니 필자 글의 내용이 적확한지 모르겠다. 조만간 책을 구하여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아... 왜 항상 글들의 보며 이러한 의문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필자의 병통이다.   

ⓒ 모암문고 www.moamcollection.org

 

* 적공翟公고사

“한(漢) 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하자 이내 그의 대문에는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고 말았다. 그 뒤 그가 다시 정위가 되자 또 당초처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교정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흥해봐야 교태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이 나타난다.[一生一死,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熊,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여 세상 사람들의 염량세태를 신랄하게 책망하였다.”(『史記· 汲鄭列傳』)

 

                                     

덧글

  • 왕소군 2015/02/05 13:27 # 삭제 답글

    세한도를 찾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림 담아갑니다. 문제가 되신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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